
주일설교
현재 위치 : 주일설교 > 주일설교
잘 받아들이는 사람
제목 | 잘 받아들이는 사람 | ||
---|---|---|---|
본문 | 롬 4:13-25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9-01-20 |
우리 인간의 일생의 삶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고 형통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때든지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길이 있고 이 세상의 어떠한 것보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의 존재와 삶의 목적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쫏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어려워진 것은 이 경제적인 영향이 우리에게 끼치는 것이 너무 큰 것입니다.
AD386년 11월 13-15일까지 이태리 밀라노에서 젊은 사람들이 몇 명이 모여서 극히 평범한 질문,
그 당시 헬라 문화속에 있었던 저들은 논의하기를 좋아하고 이렇게 모임을 자주 가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가지고 모두 모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였던 참석했던 청년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됩니다. 10일 이후에 교회에 나와서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됩니다. 누구냐 하면 그 분이 바로 어거스틴 이라고 하는 분입니다.
여러분은 어거스틴을 대체로 성자로만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거스틴이 얼마나 귀하냐, 어거스틴이 얼마나 중요하냐. 기독교 역사에 오늘날까지 오는 동안 기독교가 온 세계로 향하여 나가는 이 교량역할을 한 분이 3사람입니다. 사도바울, 어거스틴, 마틴 루터입니다.
사도 바울이 있음으로 이 복음이 아시아에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에 의해서 기독교는 그 신학의 기초에 의해서 이 복음이 온 유럽과 세계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얼마나 어거스틴이 귀한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어거스틴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행복이라는 이 질문을 가지고 찾다가 고민하면서 여기에 대한 대답을 얻지 못하고 예수님께로 가면서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행복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① 언제 까지나 지속되어야 하고 ②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빼앗기는 행복이 참 행복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참 행복이 무엇입니까. 언제나 지속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복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있었던 행복이 오늘 유리그릇처럼 쨍그랑하고 깨어질수가 있습니다. 행복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주변에는 얼마나 복잡한 시장통로에 있는 하나의 유리그릇에 지나지 않아서 누가 지나가다가도 건드려도 이 행복은 무너지게 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제 행복한 분이 오늘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고, 오늘 행복한 분이 내일 모래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연약한 이 행복의 이 소망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때 주님이 주시는 행복, 주님이 나와 함께 할 때에 누리는 이 행복은 영원히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10년전에도 기뻐했던 것처럼 어떠한 장애물도 우리는 넘어설수 있고 어떠한 어려움도 넘어설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우리의 기쁨, 평안, 구원, 은혜는 언제나 변함이 없고, 어떠한 장애물도 가로 막을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자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 바울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문제를 우리 기독교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나의 앞날, 가정, 국가와 이 민족의 문제를 하나님이 내려주신 그 은혜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큰일을 할 수 있었고, 큰 민족이 될수 있었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어려운 시대임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것은 너무 많은 변화 때문입니다.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릅니다. 국제 정세가 다릅니다. 너무 많은 변화가 어느 한 분야 관계없이 모두가 다 변합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기독교는 한마디로 말하면 받아들이는 종교입니다. 다른 종교는 전부 내 힘으로 해결해요.
받아들이는 종교가 아니에요. 내 문제 내가 해결하고 우리 문제 내가 해결하는 거에요.
기독교는 내 힘이 아닌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들일때에 내가 살고 여러분이 살줄로 믿습니다.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기독교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문둥병이 들어서 받아들임으로 문둥병의 고침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받아들임으로 제자가 되고 고기를 많이 잡을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다 부족합니다. 이 부족함을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임으로 부족함을 해결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천사로 태어나서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일생동안 인간의 힘으로 끝까지 살아가기에는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제한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계윤리라는 말이 있고 한계 상항이 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모든 일을 다 감당할수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받아들이는 종교에요.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은 비결이 딱 하나입니다. 받아들이는 거에요.
75살에 부름을 받았지만 늦게 출발을 했어요. 하나님께서 너는 고햐을 떠나라, 너의 친척과 부모 형제를 떠나라,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복주고 너의 이름을 창대케 하며, 너로 복의 근원이 되게하고, 천하 만민이 너로 복되게 하리라,
아브라함은 받아들이는 거에요. 글쌔 그런일이 있을수 있을까, 그러지 않았어요. 아멘, 받아들이는 거에요. 오늘 이 유전자를 이어받은 저 유럽, 이 혈통을 이어받은 유대인들이 복을 받은 이유가 머에요.
받아들이는 민족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아요. 우리는 너무 의심이 많습니다.
이 사람 말 듣고 의심하고, 저 사람 말 듣고 의심합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또 아들을 준다는 거에요. 하나님이 아들을 주신다고 하니까 나이가 90이 됐는데도 받아들이는 겁니다. 다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니까 받아들이는 거에요.
창15:1 부터 읽어보면 하루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 내어요. 아브라함아, 너 하늘을 바라, 예, 머가 보이느냐, 별들이 보입니다, 별이 많냐, 너무너무 별이 많습니다. 그래 내가 너에게 너 자손들을 후손들을 이렇게 많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자기 혼자 100세가 됬는데 아무도 없지만은 받아들이는 거에요. 하나님이 저에게 그 복을 주시면 그렇게 될줄로 믿습니다.
4천년전에 아브라함이 그 복을 받았다면 오늘 예수를 믿어도 이렇게 믿어야 복을 받는다는 거에요.
예수 믿으면 잘됩니다. 예수 믿으면 은혜 받는다, 새 사람된다, 우리가 이렇게 믿어야 되는 겁니다.
믿으면서 저주는 저주대로하고 원망은 원망대로, 불평은 불평대로 하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내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비밀은 받아들이는 거에요.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받아들임으로 예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안 받아들이면 안되는 거에요.
내가 문을 두드리오니 누구든지 열면 내가 너에게로 들어가 너로 더불어 먹는다고 했습니다.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 집안에 주님을 영접해야 됩니다. 내가 가는길에 주님 동행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마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사님 인사말 ㅣ 예배안내 ㅣ 오시는 길 ㅣ 이용약관 ㅣ 개인정보취급방침
주소 : (36741)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충효로 3737-20 신석교회 TEL : (교회) 054-822-0191 (목사) 010-3557-9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