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
현재 위치 : 주일설교 > 주일설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
제목 |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 하라 | ||
---|---|---|---|
본문 | 고전 14:34-40 | ||
설교자 | 김재수 | 날짜 | 2018-07-08 |
오늘 본문을 읽고 설교 준비를 하면서 마음을 참 많이 썼습니다. 제목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를 하고 나면 여자 분들이 제게 돌을 던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성령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오늘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34-35절 읽다.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열을 받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충격은 받아도 열은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설교를 들을 때 혹 이해가 되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달라도 아멘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인 줄로 믿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그래, 맞아. 아멘! 하게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그 말씀이 충격적이고 이해가 되지 않아도 열을 받거나 항의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8:37절을 보면,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를 잘 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화를 내며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이건 하나님 말씀이 아닌데 예수가 잘못 전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돌로 치려하니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해답을 요한복음 8:4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난 마귀의 자녀다.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가슴이 없다. 또 47절에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여러분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 하시는 것은 복 있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증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화가 나고 항의하고 싶다면 그것은 마귀의 자녀가 된 증거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우리 주님께서는 축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화 있을진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화를 내고 항의하는 사람은 저주받을 마귀의 자녀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충격적이고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을 받아도 항의하지 않고 화내지 않고 힘들어도 묵묵히 순종합니다.
저는 창세기 22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나이 백세에 얻은 이삭은 그에게 너무 소중한 아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브라함,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바쳐라.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번제는 양을 칼로 죽여 태우듯이 죽이고 태워서 사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충격적인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라. 그런데 어떻게 약속을 깨뜨리신단 말입니까?
아브라함은 항의를 할 만한데도 항의하지 않고 충격은 받았지만 예하고 아들, 그리고 사환과 함께 나귀에 장작을 싣고 갔습니다. 3일을 가다보니 한 산이 보였습니다. 그 산이 모리아 산일 것이라는 감을 잡은 아브라함은 사환은 거기에 있게 하고 이삭의 등에 짐을 지웠습니다.
아마 이삭은 그때 짐을 처음 져보았을 것입니다. 큰 부잣집의 아들이니 짐을 지는 일은 생각도 경험도 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이삭의 등에 짐을 지우고 아브라함은 칼과 불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삭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하나님 앞에 번제할 어린 양은 없네요?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서 장작을 쌓은 후에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이 애비가 미친 것이 아니다. 너와 네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너를 원하신다. 내가 너를 칼로 찌를 때 네가 도망갈 수도 있으니 너를 묶겠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밧줄로 묶어서 장작 위에 얹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항의하지 않고 양을 잡듯이 아들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시어 급히 막으셨습니다. 아브라함, 아브라함.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네가 네 독자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줄을 내가 알았다.
바로 그때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릴 양을 정말 준비해 놓으셨네. 아브라함은 그 양을 잡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 네가 네 독자 이삭도 아끼지 않았으니 나도 네게 아낌없이 큰 복을 주리라. 할렐루야!
여러분의 자녀가 소중하고, 남편과 아내가 소중하고, 기업이 소중해도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나는 못해요. 나는 하나님 말씀을 믿을 수 없어요. 나는 그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어요. 항의했다면,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없는 것은 물론 망했을 것입니다.
충격은 받았어도 화내지 않고 순종하니까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이치에 맞지 않고 내 생각에 맞지 않고 내 이성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에게 귀하고 복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는데 여자를 먼저 짓지 않으시고 남자를 먼저 지으셨습니다.
토기장이가 큰 그릇도 만들고, 작은 그릇도 만들고, 아름다운 그릇도 만들고, 함부로 쓰는 그릇도 만듭니다. 그런데 작고 못생긴 그릇이 토기장이에게 아니,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 왜 나를 아름답게 만들지 않고 못생기게 만들었어? 이건 공평하지 않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릇은 토기장이에게 항의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 왜 여자를 먼저 짓지 않으시고 남자를 먼저 지으셨어요?
항의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창세기 3:16절에,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 너는 아내를 사모하고 아내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에게 너는 일평생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위계 질서입니다.
그렇다고 남편은 귀하고 여자는 천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나 여자나 동등한 인격자입니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질서상 위계가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절에도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반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은 마귀의 사람인 것입니다.
에베소서 5:23절에도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남편이 어리석고 아내가 유능해도 하나님께서는 남편을 머리로 삼으셨지, 아내를 머리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잘 다스리는 남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아내도 존귀한 여자가 됩니다.
여러분, 바울이 남존여비 사상을 갖고 있었던 분은 아닙니다. 바울도 여자를 귀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고린도 교회 여 성도들이 지나치게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계시를 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여자들에게만 은사를 주신 것처럼 여자들이 교회를 휘어잡아 남자들은 주눅이 들어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바울을 통해 질서가 없어서 안 되겠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질서를 지키라는 말씀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남자는 남자의 위치에서, 여자는 여자의 위치에서 질서를 지킬 때 가정도 복되고 교회도 복되는 것입니다. 남편은 목숨을 걸고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자세를 지니면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가정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그대로 가정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서로 싸우는 부부는 남편이 자기 위치를 떠났던지 아내가 자기 위치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 말씀이 합당하지 않은 것 같고 이치에 어긋난 것 같아도, 그대로 순종하면 더 잘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 그리고 세계 교회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우리 모두의 가정이 말씀대로 되기를 축원합니다.
목사님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순정하고 하나님의 의지하고 모든것을 다 바치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한태 큰복을 내리시고 또한가정에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다 하시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목사님 저의들 가족자녀들 이미 우리하나님한태 모든거 의지하고 순정하고 뜻으로 따르고 주관하여 주시고 잇다고 믿고 주님에 가정으로요 목사님 주일를 지키지 못한을 괴로울때가 너무나 많아요 때로는 시험을 마귀가 해방을 지우고요 저는 주님과 날마다 함게하며 목사님 주일마다 은혜로운말씀 감사드립니다
집사님, 댓글 까지 달아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집사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신앙이 자라는 모습을 보게 되네요. 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심을 믿고 열심히 사세요. 저는 늘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열을 받거나 항의하면 안된다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심 없이, 생각 없이 받기만 하는 말씀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생기기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후반부에는 아내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남편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내들에겐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교회에 내주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목사님께서 처음에 오늘 설교가 여자들에게 반발을 살 것 같다는 말씀은, 성경엔 아내에게만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똑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신 일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매다신 일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바라시는 것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죽으셨듯 남편도 아내를 위하여 죽기까지(비유적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 사랑하시기를 바라시는 것을 말씀하셨으면 듣는 제가 '설교가 남편과 아내를 구분하는 것 같고, 아내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어보면, 교회에서 여자들이 잠잠하라고 바울이 말한 것은 고린도교회의 특별한 사정 때문인 것처럼 들립니다. 해당 시기에 고린도 교회에서 여자들이 '지나치게' 방언하고 계시하고 예언했기 때문에 질서를 위해 여자들이 잠잠하라고 한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그것을 지금의 교회에까지 연결시켜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죄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도 온전히 하나되지 못해 서로의 말과 행동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지금 남편이 아내의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일 때에도 여자들이 잠잠하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열을 받거나 항의하면 안된다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습니까?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의심 없이, 생각 없이 받기만 하는 말씀 속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생기기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에베소서 5장 22절 후반부에는 아내에 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남편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내들에겐 남편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남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교회에 내주심 같이 아내를 사랑하라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목사님께서 처음에 오늘 설교가 여자들에게 반발을 살 것 같다는 말씀은, 성경엔 아내에게만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똑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하신 일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매다신 일이었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아내도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바라시는 것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죽으셨듯 남편도 아내를 위하여 죽기까지(비유적 표현이 아닌 문자 그대로) 사랑하시기를 바라시는 것을 말씀하셨으면 듣는 제가 '설교가 남편과 아내를 구분하는 것 같고, 아내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어보면, 교회에서 여자들이 잠잠하라고 바울이 말한 것은 고린도교회의 특별한 사정 때문인 것처럼 들립니다. 해당 시기에 고린도 교회에서 여자들이 '지나치게' 방언하고 계시하고 예언했기 때문에 질서를 위해 여자들이 잠잠하라고 한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그것을 지금의 교회에까지 연결시켜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 궁금합니다. 죄로 인하여 부부 사이에도 온전히 하나되지 못해 서로의 말과 행동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지금 남편이 아내의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상황일 때에도 여자들이 잠잠하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목사님 인사말 ㅣ 예배안내 ㅣ 오시는 길 ㅣ 이용약관 ㅣ 개인정보취급방침
주소 : (36741) 경상북도 안동시 남선면 충효로 3737-20 신석교회 TEL : (교회) 054-822-0191 (목사) 010-3557-9346